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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이순이 모범어르신> 80여 평생 동북4구와 인연 맺어 - 8남매 맏며느리로 효부상, 적십자 봉사도 매진
  • 기사등록 2019-11-05 19:4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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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역 봉사에 항상 적극적으로 나섰던 이순이 어르신이 가장 소중하게 생각하는 효부상을 들고 환하게 웃고 있다.

▲이순이 어르신이 그동안 받은 표창장 중 일부.

▲이순이 어르신이 그동안 받은 표창장 중 일부.

도봉구 방학3동 청구아파트에 사시는 이순이 어르신은 분구가 되기 전 1937년 현재의 노원구에서 태어나셨으니 80여 평생을 이 지역에서만 보내신 셈이다.


이순이 어르신이 10월 노인의 달을 맞아 도봉구에서 주는 모범어르신 표창을 받았다. 어르신은 세심천 경로당 동료 어르신들에게 거한 점심도 기분 좋게 대접했다고.


어르신이 지금까지 받은 상은 모범어르신 표창 외에도 선행봉사 부문 성북구민상과 대한적십자 표창장 등 10여개가 넘는다.


이순이 어르신을 인터뷰하며 노원, 도봉, 강북, 도봉 등 동북4구와 떼려야 뗄 수 없는 이순이 어르신 인생사를 들을 수 있었다.


어르신은 당시 어려운 가정 형편에 6남매 맏이였던 지금은 사별한 남편에게 시집을 갔다. 시댁이 당시 도봉구 번동. 결혼 후 시어머니가 2명의 자녀를 더 출산해 8남매의 맏며느리가 됐지만 시부모를 모시는데 더욱 정성을 다했다.


시어머니가 61세에 자궁암이 발병됐지만 83세까지 건강하게 살다 돌아가신 것도 며느리의 지극정성 덕분이라며 주위에서도 칭찬이 자자했다.


당시 한국노인공원건립추진위원장이었던 홍성우 국회의원에게 이 같은 효행이 알려지며 효부상을 받게 됐다. 많은 표창장 중 효부상이 가장 자랑스러운 것도 효부상을 받으며 주위 봉사에 눈을 떴기 때문이다.


많은 표창을 받은 적십자 봉사활동의 계기는 한 소녀가장을 후원하면서부터였다. 시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주위를 돌아보게 된 어르신은 소녀가장에 대한 뉴스를 접한 후 수소문해 그 소녀가장을 후원하게 됐다. 3남매가 성장한 후 더 이상 후원 할 수 없게 됐지만, 정성스레 쓰인 감사 편지를 받고 더욱 봉사에 매진하게 됐다. 적십자 봉사를 시작하게 된 것도 그 무렵부터.


어르신이 봉사하던 지역은 그 사이 도봉구 번동에서 성북구 장위동으로 변했고, 다시 강북구 번동이 됐다. 어르신의 동북4구와의 인연은 봉사와 함께 자연스럽게 이어진 셈이다.


어르신의 봉사 활동은 도봉구로 이어지며 80을 바라보던 나이인 4년 전까지 계속 이어졌다. 4년 전 무릎 수술을 받으면서 불편해진 다리로는 더 이상 봉사를 이어갈 수 없게 됐다. 


하지만, 봉사에서 손을 놓았음에도 봉사에 대한 노력이 도봉구에서 인정을 받게 돼 아쉬움을 달랠 수 있었다.


이순이 어르신은 봉사와는 멀어졌지만 주변을 보는 시선은 언제나 따뜻함을 유지하고 있다. 요즘은 경로당을 이용하는 어르신들의 불편한 모습이 눈에 띈다고. 본인처럼 지팡이에 의지해야 하는 어르신들이 이용하기에는 경로당들의 많은 계단이 아쉽기만 하다.


그나마 세심천 경로당은 계단이 많지 않아 종종 들를 수 있지만, 청구아파트 경로당은 건물 2층에 위치한데다 계단도 많아 도저히 이용할 엄두가 나지 않는다. 


인터뷰를 마치며 이순이 어르신은 “봉사를 내려놓은 후 적적함을 달래려 경로당을 자주 찾게 된다”면서, “다리가 불편하다보니 계단이 많으면 오르기가 힘들어 앞으로 지어지는 경로당들은 1층에 주로 지어졌으면 좋겠다”며 다리가 불편한 어르신들에 대한 배려를 잊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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