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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16-10-05 11:5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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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회 김수영 청소년문학상-대상(고등부)


과자로 만든 집           

 

허은정(안양예고 2) 


누나 내 몸에서 무슨 냄새가 난대
작년 크리스마스 때 안 먹고 남겨 둔 과자 냄새야
아니야 비가 새는 지붕 냄새야
그러니까 과자 봉지를 너무 오래 열어두면 안 된다니까


개미들이 줄을 지어서 방바닥을 기어간다
처음부터 여기는 우리 집이 아니었으니까
개미들의 꽁무니를 따라 방은 더욱 잘게 부수어지고


눅눅해진 비스켓에서는 박스 냄새가 난다
비를 맞고 부풀어오른 폐지들
누나 목 마른 여름밤엔 왜 헛배가 부르지


과자 생각을 너무 많이 하면 입 안에서 단내가 풍겼다
단내를 맡고 개미들은 또 대열을 이뤄서
나쁜 기억부터 먹어치우는 법을 배웠다


무서운 건 단내를 맡고 산에서 내려오는 지네가 아니라
여름밤을 뒤척이게 하는 우리들의 허기
우리도 모르게 과자 집을 뜯어먹고 있었고


슬레이트 지붕이 무서워 울다 잠든 밤에는
동생 입가에 하얀 버짐 자국이 남았다

이 누추한 집이 들키지 않게
과자 부스러기를 흘리지 말아줘


좋은 기억만 먼저 꺼내먹어서
우리들의 손톱 밑에는 못 다 꾼 꿈자리가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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