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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뽀] 쌍문동 한양아파트 7차 화재현장을가다. - “모두 어쨌든 살아가야지 않겠느냐?” - “가족과 함께 모여 따뜻한 밥 한끼가 간절” - “농담이라도 안하면 제정신에 있질 못한다”
  • 기사등록 2016-10-17 13:2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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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재가 난 1302호는 사람이 산 흔적을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전소 됐다.

화마(火魔)는 추억을 도려내 놓고 아무것도 채워 넣지 않고 떠났다.


쌍문동 한양아파트 7차에서 1302호에서 지난달 24일 시작된 불은 옆집과 윗집들로 번지면서 모두 태웠다. 불을 진압하기 위해 쏘아댄 물은 아래층 침수로 이어졌다. 화재가 난 집에서는 3명이 사망하고 1명은 중태이며 그 집 아들만 살았다.


당국은 쌍문동 화재 재발 방지를 위해 다양한 대책을 내놓고 있다. 연일 매체에서는 기고와 대책 등이 쏟아져 나온다. 그럼에도 불구 화재로 인해 피해를 입은 사람들에게는 공염불처럼 들린다고 한다. 본지는 보름여가 지난 후에 쌍문동 화재 현장 방문을 통해 화마(火魔)가 지나간 흔적을 확인했다. 취재 내내 편한 감정은 아니었다. 화재와 관련한 피해자들은 가벼운 농담을 툭툭 던졌다. 그들은 “농담이라도 안하면 제정신에 있질 못한다”라고 말했다. 조용히 뱉어낸 일갈에 고개가 끄덕여졌다. 엘리베이터에서 만난 사람들은 안부를 저마다 묻지만 어디에 닿지도 않을 이야기들이었다.


아울러 미담사례로 여러 매체에 소개되고 있는 상황이기는 하다. 1302호에 피해보상을 요구하지 않겠다는 것. 매일 얼굴을 보고 엘리베이터를 타던 이웃이고 그 집 가장을 포함해 거의다 죽었는데 어찌 피해보상을 하겠냐는 이유 때문이다.


필자는 온정을 베풀고 함께 사는 것은 사는 것이고 살아가야 할 사람들의 모습을 전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 1301호
화재가 발생한 앞집인 1301호의 조병기 화재피해가구 대책위원장의 집을 들어가보니 검게 그을려 있었다. 우선 벽에 걸린 가족사진이 눈에 띄었다. 딸 2, 아들 1명이  조 위원장과 그의 아내 뒤에서 발랄한 포즈를 취하고 있었다. 가족사진 주변은 검은 그을음이 자리해 있었다. 둘 사이의 간극은 이상한 감정을 불러 일으켰다. 이들은 각자 다른 친척집에서 기거하고 있다.


조 위원장은 “아무리 마음씨 좋은 친척이 정리가 될 때까지 살다가라 해도 그렇게 되겠느냐?”라며 “최근에 가장 간절한 소원이 가족과 함께 모여 따뜻한 밥이라도 한 번 먹고 싶을 정도다”라고 말했다. 그는 고개를 떨궜다. 한쪽 구석을 가리켰다. 그곳은 옆집과 연결된 가벽이 있던 자리였다. 가벽은 구멍이 난 상태였다. 창고처럼 쓰던 공간에 조 위원장이 어린시절부터 모아뒀던 사진이나 글 따위를 보관했다고 한다. 그의 시간창고였던 셈이다. 모두 타서 없어졌다. 화재가 나던 날은 자신의 과거가 사라진다는 것은 생각을 해보지도 못했다. 다만, 살아나갈 수 있기만을 바랬다. 타버린 집과 함께 돌아온 것은 날아가버린 과거였다.


1301호에서 사라진 것은 가족의 웃음소리와 추억의 흔적들이었다.


■1402호
이 집을 방문했을 때 모녀가 정리를 하고 있었다. 화재가 난 바로 윗집이다. 열려진 문틈사이로 피아노가 보였다. 피아노쪽으로 다가가 사진을 찍었다. 어떤 소리도 나지 않을 터였다. 피아노 위로는 여러 가지 것들이 타서 뭉쳐져 있었다. 이전의 피아노 관련 상장과 악보들이라고 했다.


“피아노를 초등학교 때부터 쳤으니까 15년 넘게 쳤는데 모두 날아갔다.”
피아노 덮개는 더 이상 열리지 않을 것이다. 피아노 반대편에는 책상이 있었다. 책상 위 검은 뭉치를 드니 유리아래 조그만 사진 두장이 있었다.


“모두 타고 이거 두 장 남았는데 예전의 모습은 이젠 남아 있지 않다”며 “침대 밑에는 어릴 때부터 모아놓았던 손편지 들이 있는데 그것도 날아갔다”면서 “손편지는 이제 주고 받지 않는데 소중한 것들을 여럿 잃었다.”


그 외에도 모든 것들이 탔다. 특히 이집에는 몇 개월전 샀다는 65인치 TV가 있었다. 그 TV의 사정을 들어보니 모녀가 TV를 사네 마네 하며 싸우면서 몇 개월을 고민하다가 큰 맘 먹고 샀다는 것이다. 이제 그 TV는 불을 밝히지 않는다.


옆에 있던 다른 피해주민이 “이 동네에서 이 TV사려면 정말 천 번 넘게 고민하고 큰 맘 먹고 샀을 것”이라고 말했다. 다들 수긍하는 분위기였고, 1402호에서 빠져나오기 전까지 아무말 없이 성인 남자 여러명은 어두운 화면만을 응시했다.


1402호의 피아노. 형체만 남아 있을 뿐이다.

■1202호
악취가 심했다. 탄 흔적은 없다. 그렇지만 위에서부터 떨어진 물 때문에 천장에는 곰팡이가 여기저기 피어 있었다. 아직도 바닥에는 물이 고여 있는 곳이 있었다.


“곰팡이가 떨어지면서 옷에도 묻어서 2차 피해가 우려된다. 옷을 다 갖다 버릴 수도 없고 매우 난감한 입장이다.”


이 집 주인은 그래도 밝아보였지만 화재가 난 것이 아니다 보니 말을 아끼는 것일 수도 있다고 판단됐다. 이 집문을 열어놓으면 1층에서 15층 전체에 악취가 난다고 했다. 이미 청소를 했지만 냄새는 쉬 없어지지 않는다고 한다.


엘리베이터에도 그 냄새가 그대로 배어 있었다. 그렇지만 누구하나 찡그리지 않았다.


이외에도 다른 집도 상황은 비슷했다. 중앙으로 옮겨놓은 옷가지, 가구들. 바닥을 청소하는 소리. 오며가며 하는 눈인사들. 모두 비슷했고 어찌할 줄 몰라하는 것처럼 보였다.


피해가구주민들은 어떻게든 살아가긴 해야지 않겠냐고 말하지만 막막함만 앞서는 분위기였다. 다행히 주변 아파트에서 월세보증금을 안 받는 곳도 있고, 지역 국회의원이 찾아와 피해 대책을 논의하자는 상황이다. 구청장을 비롯한 구청에서도 실질적인 도움을 주기 위한 대책마련을 고심중이며 일부 실행하고 있다고.


그들은 금전적인 보상을 통해 완전한 원상복구를 바라지도 않았다. 다만, 가족끼리 예전처럼 모여 살고 싶다는 바람뿐이었다.


추억과 과거를 잃고 현재를 살면서 미래를 이야기 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일 것이다. 그러나 이들은 모두 어쨌든 살아가야지 않겠느냐는 입장이다. 화재의 진원지였던 1302호도 그렇고.
앞으로 이들이 여러 가지 추억을 다시 쌓아가면서 과거를 밀어내길 바랄 뿐이다.


화재현장에 있는 발랄한 포즈의 가족사진이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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