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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24-01-16 19: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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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원양 열사가 2023년 12월 31일 별세했다.


도봉구 창3동의 큰 어르신인 정원양 열사가 지난해 12월 31일 향년 88 세로 별세했다. 그는 4.19혁명의 영웅으로서 불의에 맞서 싸워온 민주화 운동의 중요 인물로 기억되고 있다.


정원양 열사는 1935년 6월 30일 전북 정읍에서 태어났다. 그는 부친 정영옥 선생과 모친 김홍옥 여사 사이에서 1남 1녀 중 첫째로 태어나 평소 불의와 타협하지 않고 정직하며 책임감이 무척 강한 성품으로 성장했다.


동국대학교 법과대학에 입학한 정원양 열사는 졸업 후 육토영화사 경남지사장으로 재직했다. 또, 특별검찰부 반민주행위자 경기도조사위원, 4.19포럼 수석부위원장, 4.19민주혁명회 선거관리위원회 위원장과 부회장, 회장직무대행을 역임하는 등 국가와 사회에 헌신적인 역할을 수행했다.


그러나 그의 업적은 4.19혁명 참가로 더욱 빛났다. 1960년 4월 19일, 정원양 열사는 불의에 항거하는 시위 도중 경무대 앞에서 경찰의 발포로 인해 흉부와 오른 다리에 총상을 입었다.


이로 인해 장기간 치료를 받아야 했지만, 열사는 장애를 극복하고 강한 정신력으로 다시 일어섰다.


열사는 꾸준한 재활훈련을 통해 사회에 복귀하며 헌신적인 모습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용기와 영감을 주었다. 또, 스스로를 극복하면서 부인 김경자 여사와 함께 두 딸을 훌륭하게 성장시켜 국가와 사회에 봉사하는 가족으로서도 존경받았다.


정원양 열사는 1993년 3월 15일 4.19혁명의 공로로 건국포장을 수여받았다. 건국포장은 대한민국의 건국과 국기를 공고히 하는 데 헌신 진력해 그 공적이 뚜렷한 인물에게 수여한다. 건국훈장 다음 가는 훈격(勳格)으로, 공적이 건국훈장을 수여할 정도에 이르지 못한 경우 수여하며, 그 크기도 훈장보다 작지만 법적 효력은 건국훈장과 차이가 없다. 현생 상훈법 시행 전에 서훈된 건국포장은 현행법상의 건국포장으로 본다.


열사는 그 후에도 4.19민주혁명의 이념을 계승하고 선양하며 4.19민주혁명회 단체발전에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그와 오랜 인연을 이어온 창3동 도봉구의원 출신인 박용서 어르신은 “정원양 열사는 4.19혁명의 영웅으로서 우리 모두에게 큰 영향을 주었다”면서, “그의 헌신과 투지는 민주주의를 지향하는 우리 사회에 큰 가치를 남겼다”며 열사를 추모했다.


한편, 4.19민주혁명은 1960년 4월 대한민국에서 이승만 정권의 독재에 항거해 시민들이 들고 일어나서 대한민국 제1공화국을 끝낸 민주주의 시민 혁명이다. 국제적으로는 아시아에서 드물게 성공한 민주 혁명으로 평가된다.


2.28학생민주의거와 3.15부정선거로 인한 시위가 4.19혁명의 서막으로, 이승만 대통령의 자유당 정권이 저지른 3.15부정선거에 시민들이 항거해 대대적으로 일어난 시위가 전국으로 확산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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