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느 때와 같이 어르신 댁 문을 밀었지만 단단히 잠겨있었습니다. 전화를 걸어도 받지 않으시고....... "가끔 말씀 없이 외출하기도 하시니까"하며 돌아서서 몇 걸음 옮겼지만 왠지 모를 서늘한 마음에 옆집을 통해 안채로 들어갔습니다. 살펴보니 할아버님이 방바닥에 엎드린 채 쓰러져 계셨어요. 깜짝 놀라 바로 뉘여 드리니 혼미해진 눈으로 눈만 깜박이시고 머리에는 피가 맺혀있어 위험 하구나 판단했습니다. 서둘러 119에 신고를 하고, 가족에게 연락을 취해 지금은 무사히 보훈병원에 입원하셔서 의식도 찾으시고 회복중이십니다. 가끔 전화하셔서 많이 좋아졌다 안부를 전해주시니 얼마나 고마운지 치료 잘 받으시고, 건강하게 퇴원하시기를 기원하고 있습니다.
보훈청에 근무하면 이러한 상황은 비일비재로 겪게 됩니다. 대부분 가족이 멀리 계시니까요. 목욕탕에서 넘어졌다 연락하셔서 함께 119를 타고 병원에 갔던 일, 부부싸움 하면서 한밤중에 어서 오라 성화하셔서 달려가야 했던 일, 전기밥솥이 고장 났다고 방문 날이 아닌데 배고프니 빨리 와서 밥 해달라는 어르신도 계시고.......연로하신 어르신들은 텔레비전이 고장 나면 답답해 하셔서 빨리 해결해드려야 합니다. 수리의뢰도 대신하고, 간단한 것은 고쳐 드리기도 하니 반 기술자가 되었습니다. 젊은이들에겐 별것 아닌 쉬운 일이지만 연로하신 어르신들은 눈이 어두워 혹은 귀가 안 들려 혼자 처리하기 곤란해 한숨 쉬고 걱정해야할 일들이 참 많습니다. 그래서 작은 도움에도 기뻐하시고 감사해 하시니, 손길하나로 큰 보람을 느끼게 되지요.
그래서 멀리 이사 가신 어르신이 잊지 않고 전화하셔서 서울북부보훈지청에서 지냈을 때 즐거웠고 그립다 말씀하시면 "저도 그래요. 어르신 감사했어요. 조금이라도 평안하게 생활하시기를 그래서 더욱 행복하시기를 바라고 있습니다."하고 말씀드립니다.
지금도 며칠 전 주민세터에 생활이 곤란한 어르신을 모시고 가서 차 상위계층 신청을 하고 와서 그 결과를 기다리는 중인데 잘 되길 바라고 있어요.
내년이면 저도 나이가 되어 보훈청을 떠나게 됩니다. 그동안 어르신들께 받은 사랑이, 배운 지식이, 깨달은 지혜가 참으로 많았습니다. 만남의 보람이 더 컸던 시간이었습니다. 잘 한 것도 없는데 지나간 세월에 후회와 아쉬움도 많습니다. 부르기 전에 달려가야 할 일도 있었고, 시키지 않아도 해 드렸어야 할 일도 있었겠지요. 내 부모, 내 형제처럼 섬기었던가. 매뉴얼은 잘 지키며 가사를 도와드렸던가. 세월만 보낸 건 아니었나. 두서없는 반성을 해봅니다. 그리고 남은 시간이라도 최선을 다해서 유종의 미를 거둬야겠다고 다짐해 봅니다.
마지막으로 국가에 헌신하신 국가유공자들이 평안한 노후생활을 영위하시도록 앞으로도 국가보훈처가 든든한 버팀목이 되고 좋은 결실을 맺어 발전하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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