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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16-06-13 10:57:34
  • 수정 2016-06-15 14:4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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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은 빼앗긴 나라를 되찾기 위해 그리고 나라를 지키기 위해 목숨을 아끼지 않았던 순국선열을 마음속에서 다시 한번 되새겨 보게 된다.

 

 


정부기관, 공공단체 그리고 군에서는 역사적인 구국인물의 이름을 시설 및 잠수함, 구축함에 명명하여 그들의 업적을 기리고 있다.


 

 

현재 아산에 소재한 경찰교육원 대강당은 ‘차일혁홀’로 명명되어 있다.

 

 

주인공인 차일혁 경무관은 암울했던 일제강점기에 중국으로 건너가 독립운동가로서 치열한 삶을 살다가 해방과 함께 귀국 후 전주에서 호국군(現 예비군) 대대장으로 근무,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육군 제7사단 유격대를 직접 조직, 국군 최초로 유격전을 시작하였다.

 

 

1951년 1월에 빨치산 2500명이 포위한 정읍 칠보발전소를 75명의 대원을 이끌고 용감하게 돌격하여 경비경찰 175명을 구출하고 빨치산을 격퇴시키는 ‘2,500대 75’의 기적을 이뤄내고 1953년 9월 빨치산 남부사령관 이현상을 사살하여 지리산 토벌작전을 사실상 승리로 이끈 전쟁영웅이다.

 

 

차일혁 경무관 외에도 수많은 경찰관들이 한국전쟁 당시 나라를 지키기 위해 기꺼이 목숨을 바치는 구국경찰의 사명을 완수하였다.


 

 

경찰은 개전이후 53년 말까지 모두 20,517차례에 결친 적과의 교전에서 9,848명이 전사하고 7,158명이 실종, 피랍되었으며, 7,652명이 부상을 입었다, 당시 재직경찰관 5만여명의 약 49%가 피해를 입은 것이다.


 

 

한국전쟁 당시 경찰의 역할은 크게 세가지로 나눌수 있다.

 

 

우선 개전 초기부터 군과의 합동작전을 수행하면서 주요 군 보급로를 경비하고 후방지역의 치안을 유지했으며, 둘째 전투가 본격화 되면서 경찰이 직접 적과 맞서 싸우는 작전을 전개했다. 특히 경찰의 대구 사수작전은 한국전쟁사에 가장 빛나는 전과의 하나로 꼽힌다.

 

 

셋째 9.28 수복이후에는 잔존 공비소탕작전을 전개해 태백산과 지리산지구 공비토벌 작전에서만 경찰이 사살·생포·귀순 조치한 공비숫자가 119,898명에 이른다.

 

 

한국전쟁 이후 1.21사태 때 순직한 최규식 경무관과 정종수 경사, 1995년 10월 부여 무장간첩작전에서 순직한 장진희 경사, 나성주 경사를 비롯하여 대간첩작전과정에서 그리고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는 과정에서 순직한 경찰관은 13,700명에 이른다.

 

 

하지만 이 같은 경찰의 희생과 헌신에 대해서는 정작 현직경찰관들 마저 잘 기억하지 못하는 경우가 부지기수이니 일반 국민들이야 오죽할까?

 

 

이번 현충일에는 서울 의주로에 경찰기념공원이 만들어져 순직경찰관을 추모는 공간이 마련되었고 대표적인 순직경찰관들의 이름으로 명명된 강의실, 부조상을 설치, 유품을 전시하는 현양사업을 지속 전개하고 내부적으로 경찰역사, 특히 해방이후 건국·구국 경찰의 역할에 대한 교육을 강화하고 있다.

 

 

이러한 것은 나라를 위해 초개와 같이 생명을 내던지신 숭고한 뜻을 기리고 유족들에게 자그마한 위로를 드리는 것은 물론이고, 경찰 선배들의 자랑스러운 전통을 이어가기 위한 것이다.

 

 

이제 2주 후면 한국전쟁이 발발한지 66년이 된다.

 

 

올해 6월에는 한국전쟁의 실상과 국가안보의 중요성에 대해 이야기를 나눠보는 것은 어떨까?

 

 

우리가 누리고 있는 자유와 번영은 호국영령과 순국선열의 고귀한 희생과 헌신의 결과이며, 그 분들의 숭고한 뜻을 추모하고 계승·발전시켜 나가는 것은 현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의 당연한 의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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