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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북부보훈지청 보훈과 조윤재
1919년 3월 1일, 3·1 운동의 함성이 지나간 뒤 일제의 감시와 압박은 더욱 거세졌다. 하지만 이러한 탄압 속에서도 순종의 인산일이었던 1926년 6월 10일, 그날의 학생들은 눈물 대신 용기를 선택했다.
품속에 숨겨둔 태극기를 꺼내 들고 격문을 뿌리며 다시 한번 대한독립만세를 외쳤다. 그리고 2026년 오늘, 우리는 그 위대한 외침의 100주년을 맞이했다.
6·10 만세운동이 우리에게 유독 깊은 울림을 주는 이유는 그 중심에 학생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들에게는 거창한 무기도, 특별한 힘도 없었다. 오직 빼앗긴 나라를 되찾고자 하는 간절한 마음과 우리가 움직이지 않으면 아무것도 변하지 않는다는 책임감이 있었을 뿐이다.
중앙고보, 연희전문 등 각급 학교의 학생들은 일제의 삼엄한 감시를 피해 비밀리에 격문을 인쇄했고, 장례 행렬이 지나가는 길목마다 숨죽여 기다리다가 그들은 일제히 태극기를 꺼내 들고 용기를 내었다.
6·10 만세운동은 침체되어 가던 국내 독립운동의 불씨를 다시 지핀 결정적 계기였다. 3·1 운동 이후 일제의 기만적인 문화통치와 감시 속에서도 우리 민족의 독립 의지가 여전히 건재함을 대내외에 분명히 보여주었다. 특히 학생들이 주도적으로 계획하고 실행한 전민족적 운동이라는 점에서 청년과 학생들이 독립운동의 중심 세력으로 성장하는 중요한 전환점이 되었다.
6·10 만세운동은 단순한 한 번의 시위로 끝나지 않았다. 당시 갈라져 있던 민족주의 진영과 사회주의 진영이 독립이라는 하나의 공통된 목표 아래 마음을 모았고, 이는 훗날 신간회 창립으로 이어지며 우리 독립운동사의 흐름을 바꾸는 계기가 되었다.
100년 전 그들이 보여준 연대와 통합의 정신은 갈등과 분열이 일상이 된 오늘날의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가치이기도 하다. 우리가 현재 누리고 있는 민주주의와 평화 역시 그날의 외침과 용기가 이루어낸 소중한 결실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100년 전 그들을 기억하고 더 나은 미래를 위해 작은 실천을 고민하는 것, 그것이야말로 100주년을 맞이한 우리가 그들에게 전할 수 있는 가장 진심 어린 응답일 것이다.
1926년의 함성은 멈춘 적이 없다. 그 울림은 2026년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의 가슴 속에서, 더 정의롭고 따뜻한 대한민국을 향한 바람으로 다시 피어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