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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26-07-15 10:14: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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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건강칼럼리스트, 9988끈 산악회 사무국장 이병록 


흔히 사람의 본색을 보려면 고스톱을 쳐보고, 술을 함께 마셔보라고 한다. 돈이 오갈 때의 탐욕과 취기 속에 감춰진 본성이 드러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인생의 가장 깊은 바닥, 즉 병원의 하얀 침대에 누워있을 때만큼 인간관계의 민낯이 투명하게 드러나는 순간은 없다.


내가 아파 누워있는 병실은 인간관계의 ‘인큐베이터’이자, 동시에 ‘단두대’다. 그 좁은 공간에 가만히 누워있노라면, 내 인생에서 끝까지 함께 ‘놓고 가지 말아야 할 사람’과 이제는 미련 없이 ‘놓고 가야 할 사람’의 명단이 서슬 퍼렇게 갈라진다.


문병(問病)이라는 잣대는 생각보다 정교하다. 병실 문을 열고 들어오는 이들과 끝내 오지 않는 이들은 세 부류로 나뉜다.


첫째, 굳이 안 와도 되는데 찾아와 주는 고마운 사람이 있다. 평소 내게 큰 빚을 진 것도 아니고, 자주 왕래하던 사이도 아님에도 나의 아픔을 진심으로 염려해 먼 길을 달려온 이들이다. 이들은 내 인생이 아직 가치 있다는 것을 증명해 주는 고귀한 존재들이다.


둘째, 올 줄 알았던 사람인데 안 오는 사람이 있다. 평소 친분을 과시하고 좋은 시절을 함께 보냈기에 당연히 얼굴을 비출 줄 알았으나, 막상 내가 약해지자 침묵하는 자들이다.


셋째, 무슨 일이 있어도 꼭 와야만 하는 사람인데 끝내 안 오는 사람이 있다. 내 인생의 상당 부분을 공유했거나, 내가 깊은 정성을 쏟았던, 혹은 마땅히 도리를 해야 할 관계임에도 외면하는 자들이다. 이들의 부재는 가슴에 깊은 비수를 꽂는다.


여기서 우리는 뼈아픈 진실과 마주해야 한다. 그리고 두 가지 결론을 내려야 한다.


첫째, 철저한 자기반성이다. 그들이 오지 않은 이유가 혹시 내가 살아온 날들의 업보는 아닌지 돌아봐야 한다. 남이 잘나갈 때는 곁에서 박수 치며 단물을 빨고, 정작 그가 힘들 때는 나 역시 모른 척 등 돌렸던 적은 없었는가. 


내가 베푼 정이 얕았기에, 그들의 발걸음 역시 내 병실 문턱을 넘지 못한 것일지도 모른다. 아플 때 비치는 타인의 냉정함은, 어쩌면 지난날 내가 타인에게 보였던 인색함의 거울일 수 있다.


둘째, 단호한 인간관계의 정리다. 반성이 끝났다면, 그다음은 ‘정리’다. 내가 아플 때 오지 않는 사람은 내가 건강할 때도 필요 없는 사람이다. 


내 불행을 외면한 이들에게 더 이상 내 소중한 시간과 감정, 그리고 에너지를 낭비할 이유가 없다. 인간관계는 양(量)이 아니라 질(質)이다. 


수백 명의 얄팍한 인맥보다, 내가 병상에 누웠을 때 진심 어린 눈물 한 방울 흘려주며 손잡아 줄 단 한 사람이 소중하다.


병원 침대는 우리에게 인생을 청소할 기회를 준다. 겉포장만 화려했던 가짜 관계들을 과감하게 솎아 내자. 안 오면 그만인 인연에 연연하며 마음 끓이지 말자.


이제 미련 없이 놓아줄 사람은 놓고 가자. 그리고 내 아픔을 기꺼이 나누어 가졌던 그 고마운 이들의 손을 잡고, 남은 인생을 더 단단하게 걸어가야 한다. 


그것이 병상이 우리에게 주는 가장 혹독하고도 값진 교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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